1402년(조선 태종 2) 백성들의 억울한 일을 직접 해결하여 줄 목적으로 대궐 밖 문루(門樓) 위에 달았던 북을 말한다. 원래 중국 요임금이 아랫사람의 의견을 듣기 위해 '감간지고'(敢諫之鼓)를 두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남조(南朝) 이후 기록에 등문고가 나타나고 당(唐) 이후 조당(朝堂)에 설치했으며, 송(宋)·명(明)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는 1401년(태종 1) 7월 송제(宋制)에 따라 등문고를 설치했다가 8월 신문고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1월에는 신문고를 통한 청원(請願)·상소(上訴)·고발(告發) 등의 처리규정이 자세히 마련되었다. 그리하여 조선 초기에 상소 ·고발하는 제도는 법제화되어 있었으나, 최후의 항고(抗告) ·직접고발 시설의 하나로 신문고를 설치하여, 임금의 직속인 의금부당직청(義禁府當直廳)에서 이를 주관, 북이 울리는 소리를 임금이 직접 듣고 북을 친 자의 억울한 사연을 접수 처리하도록 하였다. 즉, 억울함을 호소하려는 자는 서울에서는 주장관(主掌官), 지방에서는 관찰사에게 신고하여 사헌부(司憲府)에서 이를 해결하도록 하였는데, 이 기관에서 해결이 안 되는 경우에는 신문고를 직접 울리게 하였다.
이 제도는 조선에 있어서 민의상달(民意上達)의 대표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신문고를 울려 상소하는 데에는 제한이 있어서 이서(吏胥) ·복례(僕隷)가 그의 상관이나 주인을 고발한다거나, 품관(品官) ·향리(鄕吏) ·백성 등이 관찰사나 수령을 고발하는 경우, 또는 타인을 매수 ·사주(使嗾)하여 고발하게 하는 자는 벌을 주었으며, 오직 종사(宗社)에 관계된 억울한 사정이나 목숨에 관계되는 범죄 ·누명 및 자기에게 관계된 억울함을 고발하는 자에 한해 그 상소 내용을 접수 해결하여 주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제한조건에도 불구하고, 신문고에 의한 사건해결의 신속성을 얻기 위하여 사소한 사건에도 신문고를 이용하는 무질서한 현상을 초래하였는데, 이는 조선 초기에 관리들의 권력 남용으로 인한 일반 백성들의 고통을 단적으로 표시하는 것이었다.
그 후 신문고는 사용 제한을 한층 엄격히 하였는데 《속대전(續大典)》에 의하면, 자기 자신에게 관한 일, 부자지간에 관한 일, 적첩(嫡妾)에 관한 일, 양천(良賤)에 관한 일 등 4건사(四件事)와, 자손이 조상을 위하는 일, 아내가 남편을 위하는 일, 아우가 형을 위하는 일, 노비가 주인을 위하는 일 및 기타 지극히 원통한 내용에 대해서만 신문고를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신문고의 이용은 주로 서울의 관리들에게만 사용되었으며, 신문고 제도의 본래 취지와는 달리, 일반 상인(常人)이나 노비, 또 지방에 거주하는 관민(官民)은 사용빈도가 거의 없었고 효용도 없게 되었다. 그 후 연산군대(燕山君代)에 이르러 오랫동안 이 제도가 폐지되었다가 1771년(영조 47) 11월에 부활시키고 병조(兵曹)에서 주관하게 하였다.
출처: http://mtcha.com.ne.kr/korea-term/sosun/term224-sinmungo.htm
우리시대에 그런 낭만적인 신문고는 어떤 것일까? 권력에 의해 피해받는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누구에게 말해야 할까? 낭만적으로 생각하면 그 대상은 최고권력자여야 하며, 그 최고권력자는 국민이 되어야 낭만적이 될 수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민주주의는 최고권력자가 뽑은 한 사람이 최고권력자에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고, 권력이 국민에게 행사하는 일에 대해서는 방법이 국민에게 알리는 것 외에는 없다.(개인의 불행이 다수의 불행으로 감정이입이 되는 경우는 낭만적이지 못하게 특별해야 하지만 말이다)
이런 저런 우울한 상황들은 제껴두고, 억울한 것을 여러사람에게 알리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큰 사건이라면 언론이 해줄 것이다. 작은 사건이라도 어쩌면 운 좋게도 언론이 다루어줄지도 모른다(물론 권력 또는 금력자의 작은 사건이라도 대서특필되지만 말이다). 그리고 알아서 변호도 해준다. 이런 권력에 의한 관심도 역시 부익부빈익빈으로 이루어지는데, 어떤 사람은 폭력배를 사주해서 다른 사람을 패도, 간단하게 빠져나오지만, 어떤 사람은 폭력사건에 휘말린 것으로도 감방에 가야 한다. 낭만적이지 못하게도 말이다.
그 와중에 현대에 인터넷이라는 것이 나타났다. 누구든지 쉽게 여러 사람에게 알릴 수 있는 수단이 생긴 것이다. 낭만적으로 국민이 최고권력자라면 그 국민에게 북을 올릴 수 있는 신문고의 역할을 할만한 대체제가 생긴 것이고, 이는 관심도의 부익부빈익빈을 어느정도 상쇄시켜줄 수 있는 대안일지도 모른다.
불행하게도 지금의 대한민국은 온통 법으로 무장하여, 그 대안을 어떻게 하면 권력의 통제하에 넣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지만 말이다. 지금의 정보통신법은, '권력의 부조리를 알리고 싶으면, 권력에게 니가 누군지 알려주고 알려라'라는 정도일까? 비리를 밀고하고 싶은 사람에게 너의 신분을 나에게 밝히고 밀고하라는 것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익명이 보장되지 않는 내부비리 밀고자가 있을 수 있을까? 내부비리 밀고자가 없는 사회는 건강한 것일까?
p.s. 익명의 가치를 조금이나마 알려준 유투브 코리아에게 박수를 보낸다.
'쓰레기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경멸스러울 정도의 순수주의(?)자들 (1) | 2009/04/13 |
|---|---|
| 신문고 (0) | 2009/04/10 |
| 드럽게 단순하고 저열한 의식에 대한 단상 (1) | 2009/04/02 |
| 벌거벗은 임금님과 우리나라 (1) | 2009/03/17 |
| 화나는 사실들 (0) | 2009/02/02 |
| 檢, `용산참사' 전철연 개입 파악 주력 (0) | 2009/01/23 |